1975년(一九七五年)(을묘보(乙卯譜)) 서문(序文)
1975년(一九七五年)(을묘보(乙卯譜)) 서문(譜序文)
한 나라의 한 씨족(氏族)이 처음 그 현비(玄秘)로운 귀틀집의 지게문을 열 때에는 반드시 기괴(奇瑰)한 신화(神話) 전설(傳說)이 천고(千古)에 양일(洋溢, 넘쳐흐름)하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 구한(九韓) 때 탐라국(耽羅國)의 모흥품자혈(毛興品字穴)에서 탄강(誕降)한 고씨(高氏)의 초조(初祖) 고을나왕(高乙那王)의 고사(故事)도 이에서 하나이다. 이렇게 성(聖)스러운 통서(統緖, 계통)를 면면(綿綿)히 이어받아 사십오전(四十五傳)하여 중시조(中始祖) 말로성주(末老星主)가 중흥(中興)되었고, 말로(末老)에서 다시금 십사전(十四傳)하여 문충공(文忠公) 득종(得宗)에 이르렀으니 그 어른이 곧 영곡공(靈谷公)이시다.
공(公)은 일찍이 고려말기(高麗末期)에 태어나 이조(李朝, 조선)에 들어와 벼슬이 한성판윤(漢城判尹)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이르렀고, 세종왕(世宗王)의 괴임(사랑)을 받아 풍운(風雲)의 제회(際會, 만남)가 자못 융숭(隆崇)하였으며 그 사공(事功)과 훈업(勳業)은 사승(史乘, 역사 기록)에 밝게 실리었다.
이제 공(公)의 시대(時代)에서 다시금 오백성상(五百星霜)이 흐르는 동시에 공(公)의 운잉(雲仍, 후손)은 실로 만정(蔓廷, 널리 뻗음) 이십대(二十代)에 기려불억(其麗不億,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음)이었고, 경술(經術) 문장(文章)과 충효(忠孝) 잠영(簪纓, 벼슬한 가문)이 배출(輩出)하여 엄연(儼然)히 한 파(派)가 이룩되었으니 이것이 곧 영곡파(靈谷派)이다.
상고(詳考)하건대 고씨(高氏)는 고주몽(高朱蒙)의 북계(北系)인 연일(延日)ㆍ횡성(橫城)을 제외(除外)한 십여파(十餘派)가 모두 제주(濟州)로써 본관(本貫)을 삼았고 족보(族譜) 역시 여러 차례 간행(刊行)되었다. 세종(世宗) 경오(庚午)에 비롯하여 최근(最近) 갑진(甲辰)의 대보(臺譜)에 이르기까지 무릇 십여차(十餘次)의 중간(重刊)이 있었으나 오히려 누적(漏籍, 빠진 기록)과 오록(誤錄)된 것이 적지 않았음은 당시(當時)의 사정(事情)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커다란 유감(遺憾)으로 생각한 고씨첨종(高氏僉宗, 고씨의 모든 종중)은 지난 1971년(年)에 이미 고씨세록(高氏世錄)을 발간(發刊)하였고 이를 계기(契機)로 하여 제주고씨대동보(濟州高氏大同譜)를 엮어 펴낼 것을 의결(議決)하였으나 원낙 거창한 사업(事業)이었으므로 대충 구파(九派)에 나누어 관장(管掌)하게 되었으니 이 영곡공파(靈谷公派)의 서열(序列)은 그 제삼위(第三位)를 점거(占據)하였다.
구파(九派)의 보(譜)가 같은 이념(理念)과 체재(體裁)에 의(依)하여 완간(完刊)되는대로 서로 합(合)친다면 그것이 곧 「대동보(大同譜)」가 될 것이요, 나누어 갖게 되면 더욱 간편(簡便)하게 될 것이다.
이에서는 또 국토양단(國土兩斷)의 비극(悲劇)으로 말미암아 이북제종(以北諸宗)의 수록(收錄)이 불가능(不可能)함으로 1936ㆍ39년(年)에 함경남도(咸鏡南道) 홍원(洪原)에서 발간(發刊)된 양보(兩譜)를 전재(轉載)하여 앞날의 대동단란(大同團欒)에 관(關)한 일단(一端)의 진성(眞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제 이 보(譜)의 간사(刊事)가 끝남에 즈음하여 제주고씨대동보(濟州高氏大同譜) 영곡공파편(靈谷公派篇) 편집위원회(編輯委員會) 고평규위원장(高平奎委員長)이 고거문자(攷據文字, 고증한 글)를 갖추어 불녕(不佞, 저)에게 일서(一序)를 청(請)하여 왔다.
불녕(不佞)은 먼저 그 이칙(二則)의 종훈(宗訓)을 읽고서 크게 느낌을 얻은 바 있었다. 고씨(高氏)는 실로 유구(悠久) 수천재(數千載)의 역년(歷年)과 팔십세(八十世)의 대체(代替)를 보았으나 오히려 한 핏줄기의 신성(神聖)한 전통(傳統)을 지닌 한 집안임을 자랑하면서 또 새로운 이상(理想)을 자아내어 앞날의 광영(光榮)을 도모(圖謀)하려는 그 단충(丹衷, 정성)에 대(對)하여 유연(油然)히 효제심(孝悌心)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이념(理念)에 의(依)하여 엮어지는 이 보(譜)야말로 비단 고씨일종(高氏一宗)에서의 귀중(貴重)한 문헌(文獻)이 될 뿐 아니라 민족주체성(民族主體性)의 앙양(昻揚)을 부르짖는 이 때에 같은 핏줄을 흘려 받은 우리 단족(檀族, 단군의 겨레)의 환산(渙散, 흩어짐)에서 단합(團合)을 꾀함에 있어서 가장 요체(要諦)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된다.
감히 구지(苟支, 억지로) 사양치 않고 느낀 바를 엮어 고씨첨종(高氏僉宗)의 고의(高誼, 높은 정의)에 갚으려 하는 바이다.
을묘(乙卯) 오월초길(五月初吉)
문학박사(文學博士) 진성(眞城) 이가원(李家源)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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